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

by SL

시간을 정복한 남자, 류비셰프책 제목만 흘깃 보고 “새로운 시간관리법 책이구나” 또는 “빽빽하게 계획을 세워놓고 그에 따라 무미건조하게 살았던 사람의 이야기구나” 라고 판단하면 안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주어진 모든 가능성을 발현하고자 했던 한 과학자의 이야기이다. 그는 시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시간을 어떻게 썼는지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달았고, 그래서 매일같이 자신의 시간 쓰임새를 일기로 기록하였다.

그에게 있어 시간통계는 단순히 계획을 빽빽하게 채워놓고 그대로 실행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계획을 세우는 데에도 도움을 받았겠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사용해버린 시간을 분석하여 아직 사용하지 않은 시간을 보다 잘 사용하기 위한 도구였다. 더군다나 그러한 노력을 전인생에 걸쳐 철저하게 실천에 옮겼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단한 일이고…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독특한 시간관리법 외에도, 이 책은 박학다식한 과학자로서의 류비셰프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본업은 곤충학자였다지만, 그렇게 규정짓기에는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 손을 대고 있었다.

그가 건드리지 않은 학문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변증법, 역사, 기계공학,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의 학설, 플라톤의 철학 등 어느 분야에서나 그는 이전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대상에 접근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오류를 찾아냈다. 그가 관심을 가져던 모든 영역에서 오류가 드러나곤 했다. (중략) 실수나 오류와 마주치면 그는 피하는 법이 없었다. 늘 정면으로 대결했다.

곤충학자인 그가 칸트의 순수 이성 비판이나 또 세계사에 있어 아테네가 담당한 역할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른 학문 분야에 대한 관심이 한순간의 관심으로 그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의 다양한 저작은 논문으로 출판되었다) 분명 많은 독서와 공부가 이루어졌을 것이며, 그 흔적은 시간통계 일기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그 일기를 바탕으로 그의 “딴짓”들의 동기를 예측해보기도 하는데, 결국은 학자로서의 순수한 호기심과 열정이 그를 움직인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의 뛰어난 과학자로서의 면모는 다음과 같은 대목에도 나타나 있다.

만인이 믿고 따르는 상식도, 모두가 인정하는 권위도 그에게는 절대적이지 못했다. 이론의 권위는 대중적 인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허무주의자라고 불렀다. ‘어떠한 권위에도 기울지 않고 제아무리 인정받는 원칙이라도 신념으로 삼지 않는 사람’이라는 루트게네프의 정의에 따른 허무주의자였다. 여기에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류비셰프의 허무주의는 창조적 허무주의였다. 그의 목적은 타도가 아니라 대안 제시였고, 논박이 아니라 자기 확신이었다. 그의 머릿속 깊숙한 곳은 늘 활화산 같은 상태였다. 그는 아무도 진리를 보지 못하는 곳에서 진리를 찾았고 누구나 진리임일 확신하는 것에서 의문을 제기했다.

그밖에도 책 곳곳에서, 남겨진 일기를 바탕으로 저자가 되살려낸 류비셰프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자기 내면의 순수한 열정에 충실하게 살아간 과학자의 모습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게 만들며, 20대에 정한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했던 그의 인생 기록은 우리에게도 미래를 그리고 인생을 계획해보고 싶다는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