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없는 데스크탑 인터페이스가 가능할까?

by SL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로그래머나 시스템 관리자 등이 아닌- 일반 사용자들이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 있어 파일이란 개념이 반드시 필요할까? MS윈도우와 매킨토시를 모두 사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윈도우에서는 거의 Visual Studio와 인터넷 뱅킹 정도밖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주로 맥을 기준으로 생각해보았다.

먼저 음악 파일(mp3)

예전에는 윈앰프(특히 Winamp 2.x 시리즈)를 애용했지만, 맥으로 이주한 뒤로는 아이튠즈(iTunes)를 이용해 음악 파일을 관리하고 있다. 윈앰프 시절에는 음악 파일을 폴더에 적당히 나누어 두고,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그 파일을 직접 실행시키곤 했다. 하지만 아이튠즈에서는 일단 음악 파일을 라이브러리에 추가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 파일이라는 개념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대신 파일보다 더 추상적인 개념인 노래나 앨범 단위로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말 장난 같기도 하지만.. ID3 태그를 입력할 때도 마찬가지다. 윈앰프를 쓸 때에는, 은연 중에 노래 “파일”의 속성 또는 부가정보를 입력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아이튠즈에서는 파일이라는 개념을 별로 떠올리지 않게 된다.

음악이 아닌 문서의 경우는 어떨까?

나는 보통 필요할 때마다 텍스트 파일을 만들고 내용을 저장한 뒤 폴더에 주욱 쌓아두는 방식으로 문서를 관리한다. 새로운 문서가 필요하면 또 “새 텍스트 파일 만들기”를 한 뒤 내용을 입력하고 파일 이름을 바꿔서 저장하는 것이다. 그러던 것이 맥저널(MacJournal)이라는 프로그램을 알고난 후로는 “엔트리”가 “텍스트 파일”의 개념을 대체했다. 이제 메모할 일이 생기면 파일이 아닌 맥저널 애플리케이션을 떠올리고, 또 내용을 다시 찾아볼 일이 있을 때에도 파일보다는 해당 엔트리를 먼저 떠올린다.

이런 경향은 데이터 파일이 아닌 프로그램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MS윈도우에서 맥으로 넘어온 후 가장 참신하다고 느낀 것은 맥용 애플리케이션은 모두 하나의 파일(?)로 패키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윈도우에서는 어떤가? setup.exe를 실행시키면 프로그램이 설치되면서 시작 메뉴에 관련 메뉴가 추가되고 바탕화면에 바로가기가 아이콘이 만들어지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예전에 어떤 아이가 PC방에서 스타크래프트를 디스켓에 넣어왔다고 해서 무슨 소리냐며 살펴 보니 바탕화면의 아이콘만을 복사해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사용자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개념의 혼란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맥 사용자에게 있어 프로그램이란 app라는 확장자를 가진 하나의 아이콘으로 인식될 뿐, 그 사이에 파일이라는 개념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뭐가 더 좋다는 얘기가 아니라, 애플리케이션을 더 이상 파일의 조합이 아닌, 보다 상위의 그리고 직관적인 개념으로 다루고 있는 예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더 확장해서 아예 “파일없는 데스크탑 인터페이스”로 일반화시킬 수는 없을까? 물론, 당연히, 파일을 진짜로 없앨 수는 없다. 단지 파일과 사용자 사이에 하나의 계층을 추가해서 사용자에게는 파일이 없는 것처럼, 즉 투명하게 만드는 인터페이스를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파일을 대체할 개념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고, 상호호환성이나 공유 등 여러 측면에서 복잡한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한 번 쯤은 이런 관점에서 데스크탑을 바라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어느 분께서 던지신 질문이 떠오른다.

(요즘의) 유비쿼터스 컴퓨팅과 (예전의) 센서 네트워크 사이의 차이가 뭐냐?

그 질문의 의도는 사실 상 별로 차이도 없는데 이름만 그럴 듯하게 바꿔서 들고 나온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물론 그런 측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둘 사이에는 의미있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대상이라도 어떠한 관점으로 바라보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이전까지의 관점으로는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개념을 발견하기도 하고, 또 다른 방향으로의 발전을 꾀할 수도 있다.

그것이 바로, 파일 계층을 투명하게 한다는 표현이 이미 엄연히 존재하는 경향을 살짝 다르게 포장한 것에 불과할지라도, 그 관점에서 인터페이스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학문이란 끊임없는 재해석의 과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근데 누가 그랬더라?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