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의 제약과 창의성에 대한 이야기

by SL

살다 보면 너무 바빠서 혹은 잡일이 많아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오지 않는다거나 정말로 중요한 일을 못 하겠다는 한탄을 하게 된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산신령이 나타나 “그런 족쇄을 없애줄테니 지금부터는 아무 걱정 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게나.” 라고 한다면? 그러면  창조적으로 일하며 높은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높은 작업 성과를 낸 것은, “적당히” 바쁘면서 잡일도 하고 또 일정의 압박을 받던 때였던 것 같다. 예를 들어, 정말로 하고 싶지 않은 일로 밤을 새며 빈둥대다가 문득 좋은 아이디어가 ‘툭’ 떠오르기도 했고, 없는 아이디어를 짜내라는 압박에 미친듯이 관련 문헌을 찾아읽고 그래도 소득이 없어서 새벽 4시까지 멍하니 앉아있던 중에 갑자기 영감을 얻은 적도 있다.

아, 오해하지는 말자. 절대로 ‘쪼아대면 어떻게든 결과는 나온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단지 적절한 제약은 건강한 긴장감을 자극하여 효율성과 창의성을 높여주는 것이 아닐까 라는 말이다. 아무튼 요즘들어 부쩍 그런 생각이 늘던 차에 아주 흥미로운 글을 발견했다.

훌륭한 작업이 나오는 환경에 대한 흥미있는 경험담들, 아리송하고 역설적인, 그 알수 없는 양상들. (번역: 이광근)

내용의 일부분만 살짝 가져온다.

먼저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의 저자 크누스(Knuth) 교수의 글이다.

“내 인생에서 제일 창의적이었던 일들을 꼽으려고 회고해 보면, 그것들이 모두 어느 한 시절, 가장 많은 제약조건과 잡무로 치이고 있었던 시기에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1967년이 되겠는데, 그 해는 내 인생에서 가장 정신없던 시절이었지만 동시에 내 연구중에서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많은 결과들이 샘솟았던 행운의 해이기도 하다. (중략) 그 시절을 생각하면 종종 의문이인다, 내가 그 해에 보다 더 안정적이었다면 어땠을까, 내 연구가 과연 더 생산적이었을까 덜 생산적이었을까?“

또 유명한 물리학자 파인만은 이렇게 회고했다.

”고등과학원의 과학자들은 엄청난 두뇌 때문에 특별히 스카웃되어 최대한 자유롭게 연구하고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숲속의 멋진 집에 살면서 오직 생각하고 연구만 해도 되는 꿈같은 환경, 강의의 의무도 없이, 어떠한 의무조항도 아무 것이 없는. (중략) 뭔가를 할 수 있는 모든 기회가 주어졌는데 어떤 연구 아이디어도 나오지 않았단 말이다.“

마지막으로는 <장미의 이름>으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얘기를 들어보자.

”세계 창조의 작업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는 제약 조건을 만들어 심어 둘 필요가 있다. 시에서 이러한 제약 조건은 음률, 각운, 율동의 형태로 시 속에 자리를 잡는다.“

자유로운 창조작업을 위해서는 오히려 제약 조건이 필요하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다.

물론 이들 중 누구도 제약(이 있는 환경)과 창의성(생산성) 사이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각 분야에서 대가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털어놓은 경험담이라면 믿어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때문에 안되겠어”라는 말 대신 “~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라고 한 번 스스로를 다독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