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 행동경제학 투자서

by SL

효율적 시장가설(Efficient Market Hypothesis)에 따르면, 주식시장은 너무나 효율적이기 때문에 새로운 정보가 등장하는 그 즉시 주식의 가격에 반영된다. 현재 주가는 시장에 알려진 정보와 기업의 미래 가치까지를 모두 감안한 값이라는 것이다. 그럴듯하지 않은가? 만약 이 가설을 받아들인다면 아래의 주장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1. 주가는 랜덤워크 한다. 가격이 오를 것이라 예상한 사람과 떨어질 것이라 예상한 사람이 딱 반반씩 있기 때문에 그 가격에서 거래가 이루어진 것이고, 앞으로 가격이 상승/하락할 확률은 동일하다. 따라서 트렌드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2. 어떤 펀드 매니저도 지속적으로 시장보다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없다.

“뭐 임마? 그래도 그건 아니잖아!”

라는 생각은 드는데 얼른 반박할 논리가 떠오르지는 않는다면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원제 Mean markets and Lizard Brains)』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버드의 경제학 교수이자 성공한 투자가인 테리 번햄(Terry Burnham)은 이 책에서 투자자와 시장이 합리적이라는 믿음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그를 든든하게 지원하는 이론적 바탕은 최근 행동경제학이 밝혀낸 인간의 비합리성이다. 저자는 초기 인류의 생존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지만 현대 금융 시장에서는 오히려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하는 두뇌의 진화적 유산을 “도마뱀의 뇌”라고 부르면서 개인과 시장의 합리성이라는 믿음을 조목조목 비판한다. 강력한 사례들을 통해 그가 주장하는 바는 분명하다.

“사람들은 무분별하다.”

이런 비합리성을 이용하기 위해 한 행동경제학 교수가 차린 자산운용사의 펀드가 벤치마크 대비 연 8%가 넘는 수익률을 거뒀다는 대목에서 그의 설득력은 절정을 이룬다. 1부를 그렇게 마무리하고 2부부터는 본격적으로 도마뱀의 뇌를 벗긴 미국의 경제와 투자 수단을 분석한다. 마지막 4부에서는 실전 투자 지침도 제공하니 실용적인 조언을 원하는 이들은 참고하는 것도 좋겠다. 단, 2005년에 출판된 책이라는 점을 잊지 말 것.

“노벨경제학상이 증명한 최고의 실전 투자 경제학”이라는 광고 문구에는 현혹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파생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세계 금융 위기와 함께 파산해버린 롱텀 캐피털 매니지먼트(LTCM)도 엄연히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의 작품이었다.

이 책의 내용대로 사람들이 도마뱀의 뇌에 족쇄를 채우고 합리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효율성뿐 아니라 합리성까지 갖춰진 제대로 된 효율적 시장이 올까, 아니면 또 어떤 새로운 현상이 나타날까? 사실 나는 그게 가장 궁금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