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는 인간 호모 루두스: 가상 독자의 대화

A: 만나서 반갑다. 책을 칭찬하러 나온 A다.

B: 나도 반갑다. 책을 꼬집으러 나온 B다.

A: 아니, 이렇게 쉽게 게임이론의 개념을 설명하고 다른 여러 학문과의 관계를 잘 설명한 책에 단점이 어디 있다고 꼬집는단 말인가?

B: 바로 그 점이다. 게임이론의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본문에서 보여주는 것에 비해 너무 게임이론의 역할을 과대광고하는 게 문제다.

A의 선공

A: 좋다. 앞에서부터 하나씩 살펴보자. 3장까지의 내용은 게임이론에 대한 훌륭한 안내서다. 2장에서는 폰 노이만 등에 의해 수학으로 정립된 게임이론을 다양한 사례와 함께 소개하고, 3장에서는 존 내시의 수학이 게임이론 안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쉽게 설명한다.

B: 동의한다. 모두가 최적의 전략을 구사하는 상황에서 누군가 자신의 전략을 바꾸면 손해를 입게 되는 상태를 뜻하는 내시균형(Nash Equilibrium)을 화학반응의 안정성과 비교한 대목이 특히 좋았다. 74쪽 표의 오타만 빼면 흠잡을 데 없다.

A: 4장은 어떤가? 경제학과 더불어 게임이론이 가장 성공적으로 자리 잡은 분야인 진화를 다루고 있다.

B: 역시 좋은 내용이다. 독자가 죄수의 딜레마와 액설로드가 개최한 게임 대회에 대해 이미 알고 있다면 별로 재미없겠지만 게임이론 책에서 죄수의 딜레마 얘기를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하니까. 여기까지는 이견이 없다. 5장부터 본격적으로 꼬집을 것이다.

A: 신경경제학 말인가? 뇌과학 기술 발전에 힘입어 경제적인 결정을 할 때 뇌 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감정까지 고려하는 모델을 만들 수 없었지만 이제는 뇌 분비물질이나 호르몬을 직접 측정해서 체감 만족도를 계량화하고 이를 효용함수로 사용하면, 돈이 아닌 다른 요소를 중시하는 사람까지도 경제학이 품어 안을 길이 열리는 것이다.

B: 무척 고무적인 일이지만 그건 경제학에 뇌과학이 도입된 덕분이지, 게임이론의 업적은 아니지 않은가?

A: 경제학과 게임이론의 경계는 흐릿해지고 있다. 또 경제에 대한 사람의 본성을 알아보기 위해 설계한 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측면이 있고, 이렇게 발견한 결과를 다시 게임이론에 반영해서 시뮬레이션하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B: 6장에서 다루는 인간 본성과 문화에 대한 얘기로군.

A: 그렇지. 원시종족을 참여시킨 게임에서 일반적인 예상과는 다른 다양한 결과가 관찰되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최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고, 문화마다 취하는 행동이 모두 달랐다. 이 말은 경제적 선택에 있어 이기성 말고도 후천적으로 학습된 문화가 반영된다는 얘기다.

B: 갑자기 문화라니. 게임이론은 원래 자신이 이익을 최대화하는 전략을 찾는 것과 모든 참여자의 이익이 최적화되는 지점을 찾는 것에 대한 이론 아니었나?

A: 이런 유연함이야말로 게임이론이 가진 강점이다. 신경경제학에서 경제적 합리성 외에 사람의 감정까지 아우르는 효용함수의 가능성을 보였듯이, 이제는 개인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문화도 게임의 요소로 넣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게다가 단순한 게임에서도 최고의 전략은 서로 다른 몇 가지를 일정한 확률분포에 따라 섞어서 구사하는 혼합전략이었듯이, 어쩌면 문화 다양성도 인류가 외부 환경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전략이었는지 모른다. 인류학에도 게임이론이 기여할 부분이 열린 것이다.

B: 탐구할 여지가 트인 정도다. 아직까지는 확실하게 보여준 것이 없지 않나.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에 게임이론이 많은 잠재력이 있다는 점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저자는 물리학이나 특히 화학 같은 분야와도 게임이론이 결합된다고 했다.

A: 그건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기체의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그 안에 있는 모든 분자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개별 분자가 움직이는 속도가 일정한 확률분포를 따른다고 생각하면 모델링하기도 쉽고 실제로도 분자 집합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다.

B: 맥스웰이 기체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통계학과 게임이론이 무슨 관련이 있는가? 기체 분자가 게임을 하고 있단 말인가?

A: 그건 아니고, 맥스웰이 밝혀낸 바로는 기체 분자의 속도 분포가 정규분포에 이르면 더 이상 모양이 변하지 않는다. 게임참여자의 전략이 더 이상 변하지 않게 되는 내시균형이 떠오르지 않는가?

B의 반격

B: 떠오른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안정상태를 나타내는 모든 확률분포는 게임이론과 관련된다는 말이 된다. 기체 운동과 게임참여자의 전략이 어떤 평형상태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보이는 건 흥미롭지만 “게임이론은 (중략) 이제는 물질에 대한 연구(물리학, 화학 등)에서도 응용되기 시작하고 있다. 내 생각에 게임이론은 궁극적으로 아시모프의 심리역사학처럼 모든 과학을 통합하게 될 것이다”, “게임이론은 행동과학뿐 아니라 모든 과학의 보편적 언어가 될 것이다.”, “물리학자들은 항상 자연을 궁극적으로 설명해주는 통합이론을 찾아왔다. 게임이론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라며 큰소리친 것치고는 실망스럽다.

A: 단순히 공통점이 있다는 수준이 아니라 이로부터 더 큰 야망이 나온다는 게 중요하다. 개별 분자의 움직임을 모르고도 전체 기체의 움직임을 알 수 있다면, 사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개인의 행동을 예측할 수 없더라도 사회의 행동은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다.

B: 어? 그건 이 책의 주제에서 벗어나는 얘기 같은데?

A: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게임하는 인간 호모루두스”라는 제목으로 번역됐지만 원래 책의 제목은 “A Beautiful Math: John Nash, Game Theory, and the Modern Quest for a Code of Nature”다. 게임이론은 본래 게임 참가자들의 선택과 그 결과에 대한 이론이다. 그런데 이것을 써서 사람의 집단, 즉 사회의 행동을 예측하려면 일단 사람들이 사회에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알아야 한다. 8장과 9장에서 사회네트워크를 설명하고 여기에 통계역학을 접목시키는 얘기가 나오는 건 그런 맥락에서다.

B: 사실 그 부분에서 게임이론의 역할도 의문스럽다. 8장은 『링크』에서 소개된 ‘척도없는 네트워크’(크기독립적 네트워크, scale-free network)를 다시 끄집어내는데, 적어도 그런 네트워크 구조가 만들어지는 이유 정도는 게임이론으로 설명했어야 했다.

A: 자세하지는 않지만 관련 연구를 소개하고 있던데? “링크를 만드는 데 드는 비용과, 일단 만들어진 링크를 운영하는 데 드는 비용 사이의 선택문제다.” (238p)

B: 내 생각에도 네트워크의 진화를 설명하기에 게임이론은 무척 유용한 도구일 것 같다. 문제는 현재의 완성도다. 저자가 앞서 예찬한 게임이론의 위상이라면 이런 문제쯤은 이미 해결되었어야 한다. 아직 가능성을 탐구하는 수준이라면 저자는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이다. (2006년에 나온 책이니 그 사이에 더 발전된 내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9장도 마찬가지다. 게임이론이 사회물리학에 기여한 바는 적어도 책 내용으로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통계역학을 사용할 때 기체 분자에 뉴턴 물리학을 적용하듯 사람 간의 상호작용에는 게임이론을 써야 할 것이라는 주장뿐이다. 그러면서도 “네트워크와 사회문제 연구에 있어서 통계물리학과 연계한 최근의 발전, 그리고 게임이론이 양쪽 모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볼 때 우리는 게임이론과 물리학 역시 표면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심오한 차원에서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의심을 품지 않을 수 없다. 게임이론이 점점 사회과학을 기술하는 통합적이 언어로 자리매김함에 따라, 사회과학에 손을 대려는 물리학자들 역시 더 이상 게임이론을 외면할 수 없게 되었다” (267p) 라고 했을 때는 중간과정을 너무 크게 건너뛴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A: 아직 사람의 행동, 특히 경제적 이득 외에 감정이나 문화 요소, 우선순위가 개입되었을 때 어떤 결정을 내릴지 예측하는 정밀한 모형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 장에서 계산복잡도나 게임 결과의 확률 모델을 얘기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B: 마지막장으로 가기 전에 10장에서 소개하는 양자게임이론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이 이론은 실제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데이빗 마이어라는 학자 한 명에게 얘기 듣고는 ‘오.. 게임이론이 양자역학과도 연결되는군’ 하면서 그냥 소개한 듯한 의구심이 든다. 그게 아니라면 저자 스스로 특별한 이점이 없다고 인정하면서 실체가 불명확한 이론에 굳이 한 장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 이런 궁색한 변명을 할 필요도 없고 말이다. “이 세상은 그 기본입자부터 양자역학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양자게임이 실생활에 응용될 가능성이 높다”, (280p) 다시 말하지만, 어떤 현상이 확률분포를 따르기만 하면 ‘게임이론에서도 최종 전략은 확률분포로 나와. 우리는 닮았어’라며 손 내미는 것 같다.

A: 10장의 내용은 대체로 양자컴퓨터에 대한 것이고, 양자게임이론의 사례로 제시하는 것도 약간 규칙을 바꾼 보통 게임이론이라는 것을 저자도 얘기했으니 잠재된 가능성에 대한 얘기로 이해하는 게 맞을 듯하다. 짧기는 하지만, 분자들이 안정적으로 조합되는 것과 양자 얽힘의 관계를 밝혔다는 논문도 소개하지 않는가.

B: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물론 지금으로선 뭐라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이런 단서를 붙인 소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양자이론과의 결합, 아니 사람 간 게임이 아닌 무생물이 주체가 되는 현상과 게임이론의 관계는 ‘둘 사이에 공통점이 없지는 않다’ 정도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내렸다. 반면에, 마지막 11장에서는 게임이론의 결과에 대한 조금 색다른 관점이 나와서 재미나게 읽었다.

A: 게임이론이 요구하는 엄청난 연산량과 현실 게임의 참가자가 갖는 한계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게임 결과 자체에 확률분포를 도입하는 것 말인가? 엔트로피, 무지 등의 용어가 어렵기는 하지만 그 메시지는 흥미로운 데가 있다.

B: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부분도 역시 저자가 울퍼트라는 한 사람에게 듣고 소개하는 가설에 불과하지 않나. 그러면서도 “하지만 여전히 많은 게임이론가들은 아직도 ‘게임을 푼다는 것’은 곧 균형점을 계산하는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라고 싸잡아 얘기하는 것은 좀 불편하다. 그들은 적어도 게임이론에 관한 한 저자보다 전문가일 텐데.. 게다가 책 내용만 봐서는 울퍼트의 가설이 아직 의미 있는 결과를 낸 것도 아닌 것 같다.

A: 게임이론이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것이라 생각한다.

정리

B: 책의 후반부는 저자가 인터뷰한 몇 명의 연구자들의 의견에 다소 편향된 경향이 보인다. 이것과, 저자가 서두에 장황하게 늘어놓은, 게임이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있고 또 해결할 것이라는 호들갑만 빼면 책 내용은 괜찮았다. 게임이론의 역사를 훑어보면서 그게 무엇인지, 어떻게 개발되었는지, 다루는 범주가 어떻게 확장되어 왔는지를 배웠고, 사회에 물리학을 적용하는 데 게임이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잠재력을 알게 되었다.

A: 마지막이라고 갑자기 칭찬하는 건가? 지적한 것처럼, 경제학이나 정치, 진화를 빼면 게임이론이 성공적으로 안착한 분야가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저자도 이를 모르지 않아서 본문에서 계속 현재 한계를 얘기하지만, 역시 그보다는 앞으로 열릴 게임이론의 가능성을 보고 좀 앞서나간 것으로 생각한다. 한 마디로, 약간 때이른 게임이론 예찬이라고나 할까.

B: 동감한다. 오늘 대화 덕분에 책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었다. 고맙다.

A: 나야말로 다양한 지적과 비판에 감사한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또 만나서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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