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적법 절차와 인권의 가치를 일깨우다

by SL

표지에 보이는 온화한 인상의 아저씨가 이 책을 쓴 김두식 교수다. 그는 법학과를 졸업하고 검사를 거쳐 지금은 법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음에도 자신은 별로 법과 친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좀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얼마나 특이하냐면 검사직을 관두고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겠다며 2년 동안 전업주부 생활을 했을 정도다. (그에 얽힌 사연은 책에 나온다.) 『헌법의 풍경』은 그런 저자가 들려주는 국가와 인권에 대한 이야기다. 아니, 현실 속 법과 법률가, 그리고 법률가가 아닌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진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이제부터 그 안에 담긴 모습을 하나씩 따라가 보기로 하자.

1장 제목은 <정답은 없다>. 보통 사람들이 믿는 것과 같이달리, 실제 법 판결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질 만큼 철저하게 객관적이고 전문적으로 행해지지 않음을, 또 그럴 수도 없음을 보여준다. 적당한 예는 역시 음란물. 이를 통해 저자는 합리적인 절차의 중요성을 얘기하면서도 인권만큼은 어떤 상대주의에도 양보할 수 없는 절대가치임을 선언한다.

적절하게 통제되지 않았을 때 국가가 얼마나 위험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국내외 사례가 <국가라는 이름의 괴물>에 등장한다. 이어지는 <법률가의 탄생>에서는 이렇게 위험한 국가를 통제해야 할 법률가가 어떻게 특권의식에 빠져 본분을 잊게 되는지, 자신의 경험을 담아 생생하게 보여준다. 현실은 암울하지만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다음 <똥개 법률가의 시대>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더러움과는 정반대로, 이제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희망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검찰 공화국>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제도적으로 검찰이 갖고 있는 문제를 파헤친다. 검찰에 지나치게 집중된 권한, 특히 기소독점주의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와 ‘과도한 사명감’의 폐해를 이번에도 실제 사례로 보여준다. 판사나 변호사 같은 다른 법률가 집단도 있는데 비판이 검찰에 집중된 이유는 저자가 줄기차게 강조하는 개인 인권과 밀접하게 관련된 영역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만큼 비판의 강도는 세지만 구조적인 문제로 검사가 현실에서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를 향한 따뜻한 시선도 느껴진다. 직접 검사 생활을 겪으며 고민했던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헌법 정신> 장에서 말하는 주제는 개인의 자유를 인정함으로써 발생하는 현실적인 손실과 또 악용될 위험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존중받아야 할 개인의 인권이다. 다양한 자유 중에서도 유독 종교의 자유를 많이 언급하는 것은 독실한 기독교인인 저자가 그만큼 많이 고민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만큼 많이 공격질문을 받았다는 뜻일까 하는 궁금증도 생기지만, 꼭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종교의 속성을 생각하면 가장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라는 건 충분히 짐작되는 일이다. 이 화두를 깊이 파지는 않지만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을 보면, 종교적인 이유라면 다른 이에 대한 편견마저도 인정되어야 하는가 하는 얘기가 나온다. 저자는 국가 권력에 위협받는 약자의 종교 자유를 부각하지만, 그 종교가 강자가 되었을 때 허용되는 자유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여기서는 미국의 여러 판결을 들려주면서 독자 스스로 ‘나라면 어디까지 인정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게 한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참고인/피의자로 수사받는 동안의 권리 -대표적으로 진술거부권이 있다- 가 일상적으로 무시되는 현장의 모습이 <말하지 않을 권리, 그 위대한 방패>에 그려져 있다. 나중에 혹시 수사받을 일이 생기면 가이드로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잃어버린 헌법, 차별받지 않을 권리> 중에는 미국의 직장 내 차별 금지와 관련된 내용이 나오는데, 뜬금없지만 이 책이 생각난다. 법적으로 차별이 드러나면 안 되니까 자연스럽게 구직자의 신상정보를 알아내는 꼼수기술을 개발한다는..

『헌법의 풍경』은 법에 관해 새로운 지식을 주기도 하고, 간과하고 있던 가치를 떠올리게도 한다. 저자는 교수답게 논리적으로 조목조목 근거를 들어서 적법 절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무척 쉬운 글로 쓰여 있고, 곳곳에 진정성이 묻어나기 때문에 읽으면서 연방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덮고 원론에서 벗어나 현실 문제에 들어서면 독자들은 다시 자기만의 잣대로 세상을 판단하기 시작할 것이다. 거기가 바로 첫 장에서 강조한 합리적인 대화가 시작되어야 할 지점이다. 책을 읽는 동안 그 대화를 미리 준비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김두식과 ‘잭 바우어’ 사이에서 내가 어디쯤 위치할까를 고민하며, 그들과 가상의 논쟁을 벌이는 식으로 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