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경영학: 경영학의 토대를 향한 거침없는 공격

by SL

물구경, 불구경보다 재미있는 게 싸움구경이랬다. 그중에서도 말싸움이 가장 재미있다. 또, 점잖고 조심스러운 의견 교환보다는 기왕이면 대놓고 때리고 또 받아쳐서 박진감 넘치는 논쟁이 흥미진진해서 좋다. 『위험한 경영학』에서 매튜 스튜어트라는 전직 컨설턴트는 과거와 현재의 경영학 대가들에게 칼을 빼들었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그의 칼끝은 경영학이라는 학문 자체까지도 노리고 있다. 다음 주장에 귀가 솔깃했다면 책을 읽고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안 할 듯싶다.

  •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에 과학은 없으며 그저 경영자가 노동자를 더 혹사하는 수단이다?
  • 메이오의 인간중심 경영은 돈을 적게 주면서도 일은 더 많이 시키기 위한 미끼다?
  • 전략적 경영은 CEO의 높은 수입을 정당화하는 구실에 불과하다?
  • 컨설턴트는 경영자를 위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을 합리화해주는 사람들이다?

최근 유행인지 이 책도 한 챕터씩 번갈아가면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진행한다. 컨설턴트로서 저자의 경험담이 한 장 나오고, 그다음 장에서는 유명한 경영이론의 역사와 그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나왔다가, 다시 경험담을 이어간다. 다행히 둘 사이에는 연관이 있어서 흐름이 끊기는 느낌은 별로 없다.

책을 읽어 가노라면 프레더릭 테일러를 비롯하여 엘턴 메이오, 또 현재의 경영 대가들은 엉터리 이론가, 심하게 말하면 사이비 종교 교주 같다는 느낌마저 들게 된다. 여기에 막대한 공헌을 하는 저자 특유의 비꼬는 듯 냉소적인, 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말투는 어쩌면 그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중간중간 철학자의 말을 인용하거나 철학적인 관점에서 설명하는 걸 보면 그런 생각은 짙어진다.

그렇다고 테일러의 과학적 경영이나 메이오의 인간중심 경영 이론을 비판할 때마저 철학에 의존하는 건 아니다. 그들의 이론이나 발견이 익히 알려진 것처럼 엄밀한 실험과 철저한 토론을 통해 검증받은 것이 아님을 그저 하나하나 드러낼 따름이다. 전략적 경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반증불가능한 주장은 과학이 아니며, 예측은 없이 과거의 설명만 가능한 해석은 이론이 아니라는 논리에 따라 그 허구성을 공격한다. 나아가 전략이 기업의 건강한 발전보다는 암묵적인 독점과 꼼수를 찾는 수단 정도로 전락한 사례를 제시하며 그 원인을 경영학의 내외적인 속성에서 찾는다.

자연스럽게 비판은 경영대학원(MBA)으로 이어진다. 무용론 정도가 아니라 저자는 아예 경영대학원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데에 일치의 망설임이 없다. 이런저런 MBA의 문제를 지적하는데, 사실 그보다는 경영 교육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흥미롭다. 그에 따르면, 경제신문보다는 오히려 소설 같은 인문학 고전을 읽는 것이 더 유익하다. 리어왕의 경영 스타일의 결점이 무엇인지를 공부하고, 경영서나 자기계발서 대신 장 자크 루소에 기대는 게 낫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경영 이론의 중심적인 통찰은 인문학 토대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경영 이론가들이 제기하고 그들이 제공한 통찰에 대한 질문은 그럴듯한 실제적인 경영 학문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의 역사에 속한다. 그리고 경영학은 철학으로 가르치고 연구해야 한다.”

400쪽이 넘는 페이지를 달려온 독자에게 남겨진 메시지는 명확하다. 경영학이라는 학문에 우리가 보통 ‘학문’에 기대하는 든든한 이론적 토대는 없으며, 있다고 해도 최소한 그게 과학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른 학문에서도 특정 이론의 창시자가 주창한 내용과 현대적인 해석이 다른 경우는 있지만, 이 책에서 보여준 경영학 대가의 진실은 그와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런 결론은 경영학이나 컨설턴트를 향한 강력한 인상을 넘어 어떤 편견을 남긴다. 설득력도 강해서 비전공자는 물리치기 쉽지 않다. 이쯤 되니 경영학을 뜻하는 Management에 -ics라는 접미사가 없는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이런 비판에 무방비로 노출된 독자를 위해 내공이 깊은 경영학 고수가 나타나 시원하게 논쟁이라도 한 판 벌여주면 좋겠다 ;-)

PS. 책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은 날카로운 비판의 칼끝에 확실한 출처가 달려 있지 않은 점이다. 가령 테일러가 연구 결과를 왜곡했다는 내용, (조수의 노트를 참조한 듯한테 정확한 출처는 없다.) 호손 효과에 대한 독립적인 연구진의 발표, 또 톰 피터스 스스로 데이터를 조작했다고 밝힌 인터뷰 등을 언급하는데, 따로 사실 관계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노란 형광펜

  • “한번 생각해 보세요. 학교를 갓 졸업한 신출내기들을 고용해서,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회사의 지도자들을 상대로 회사를 이렇게 저렇게 운영하라고 조언하면서 수백만 달러를 받는 비즈니스보다 더 특별한 사업이 어디 있겠어요?” 그보다 더 비범한 일은, 어느 토요일 아침,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12명이 모여서 자신들이 스스로 정한 주제의 전문가를 자처하고는 그 날조된 전문성을 돈을 받고 파는 것이 아닐까?, 241p
  • 북쪽 강변을 거니는 경제학자들은 초과 이윤을 악으로 생각하는 반면, 남쪽 강변을 바쁘게 다니는 경영대학원 사람들에게 초과 이윤은 축복이었다., 248p
  • 피터스는 ‘경영의 대가 중의 대가’인데도 그의 작업에 대해 가르치는 경영 프로그램은 없다 (중략) 드러커의 경우는 더욱 이상하다. 경영대학교 교수들은 드러커를 경영 역사상 가장 위대한 경영 사상가라고 추앙하지만, 그의 작업을 학문적으로 인용한 학자는 거의 없다., 370p
  • <뉴욕 타임스>가 CEO가 잠들기 전에 읽는 책을 조사했더니, 대가의 책을 읽는 CEO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독자는 중간 관리층이나 특별히 하는 일이 없는 여성들이라는 점은 대가 비즈니스의 불편한 진실 중 하나이다., 396p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