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생명은 동적 평형상에 있는 흐름이다

by SL

최고의 교사는 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게 만드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자발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공부하게 만드는 데에는 공부의 재미를 가르쳐주는 것만한 방법이 없고, 그러자면 먼저 흥미를 느낄 만한 의문을 갖게 해야 한다. 가장 흥미진진한 질문은 오늘날 그 분야의 최고 학자들이 최전선에서 씨름하는 문제겠지만, 전문지식이 부족한 일반 독자에게 최신판 논문을 읽고 그 의미를 이해하라고 할 수는 없다. 『생물과 무생물 사이』처럼 쉽고 재미있는 과학 에세이가 반가운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책의 저자인 후쿠오카 신이치는 일본 대학에서 분자생물학을 가르치는 교수다. 또한, 어려운 개념을 비유를 통해 무척 쉽게 설명하는 재주를 지닌 작가다. 그는 자신의 연구 경험과 DNA 이중나선 구조의 발견에 얽힌 숨은 이야기와 생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이 책 한 권에 집어넣고는 그대로 갈아버렸다.

저자는 우선 생물학의 위대한 발견에 지대한 공헌을 했지만 공로에 비해 세상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에게로 독자를 안내한다. 그 숨가쁜 만남 뒤에는 스스로 생명에 대한 물리학적 통찰을 제시했을 뿐 아니라 이를 통해 장차 위대한 발견을 해낼 과학자가 생명을 탐구하는 길에 들어서도록 만든 사람, 바로 슈뢰딩거가 기다리고 있다. 책 제목이 암시하는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여정은 그로부터 시작한다.

사실 별로 길지는 않다. 두 번째로 바통을 이어받는 과학자 루돌프 쇤하이머는 생명체 안에서 분자 단위의 흐름이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실험 결과로 보여주었다. 여기에 저자는 “생명이란 동적 평형상에 있는 흐름”이라며, 그 평형이 유지되는 원리는 단백질들 사이의 상보성에 있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특히 상보성에 대한 직소 퍼즐 메타포는 무척 직관적이다.

생명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무섭게 저자는 자신의 과거 연구 이야기를 꺼낸다. 다른 연구진과의 긴박했던 경쟁의 추억, 그리고 생물학을 잘 모르는 독자를 위한 세포 강의. 다소 지루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참고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바로 그 경험으로부터 저자는 자기가 생명에 대해서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끄집어내기 때문이다. 이 사람 아주… 이야기꾼이다.

하지만 모든 의문이 말끔히 해소되는 건 아니다. 겸손하고도 한편으로는 안심되는 책의 마지막 문장, 또 동적 평형이나 단백질의 상보성에 대한 친절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책에서 설명한 이론이 실제 학계에서 어느 정도로 받아들여지는지 알 수가 없다. 이에 대해서 객관적이고 비평적인 그리고 친절한 해설이 따로 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서문에 책 내용 스포일러가 있으니 웬만하면 나중에 읽을 것.

읽고 나서 한 마디

뭔가를 정의내리는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생명의 정의가 그저 “자기복제하는 그 무엇”이라면 자기 복제만 하면 모두 생명이라고 볼 수 있는 걸까? 그럼 (컴퓨터) 바이러스는? 저자의 정의에 따라 분자와 단백질 단위의 동적평형 흐름이 생명이라면 자기복제는 하지만 스스로 이런 평형을 유지하는 활동을 하지 않는 바이러스는 생물이 아니다. 오케이. 그런데 정말 그걸로 충분할까?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보자. 이론적으로 우리는 ‘자기랑 동일한 로봇을 만들어내는 로봇’을 상상할 수 있다. 태양에너지로 전력을 공급받고 직접 원료를 구해서 자기와 똑같이 동작하는 (자식)로봇을 만들어내는 기계가 있다면 이 물체는 생명일까 아닐까? 이때에도 단백질이나 분자 단위의 동적평형을 생명의 기준으로 쓸 수는 없지 않을까?

내 생각은 아니고 이미 오래 전부터 인공생명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던지는 화두다. 생명이 신비로운 현상임은 틀림없지만 그 의미를 탐구하는 건 이제 더 이상 윤리학자나 생물학자만의 영역은 아닌 것 같다.

노란 형광펜

  • 조숙한 천재를 칭송하고 한때의 젊은 시절만이 연구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떠들어대는 과학계에서 때늦은 꽃을 피운 에이버리는 일종의 위안을 주는 ‘이름 없는 영웅’인 것이다., 53p
  • 일본이든 미국이든 석사 2년, 박사 3년, 합계 5년이 표준이다. (중략) 우리에게 박사 학위는 연구원으로서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한 운전면허증에 불과하다., 75p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