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의 미래: 예측 모형의 힘과 한계

by SL

밤하늘의 별자리에서 미래를 발견하려고 한 점성술가와 달리 현대의 예측가들은 데이터와 이론이라는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그들의 현대판 마법의 수정구슬은 때로는 복잡한 수학 방정식으로, 때로는 나무처럼 생긴 그래프의 모습으로 계시를 주는데, 이런 도구들을 통틀어서 모형(model)이라고 한다.

모형이 미래를 예측하는 데만 쓰이는 것은 아니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배우는,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던 당구공이 충돌하면 되는지를 설명하는 물리 법칙도 하나의 모형이고, 화학 교과서의 원자 모형은 말 그대로 모형이며, 은행에서 나에게 신용카드를 발급해줄지 말지 결정하는 알고리즘도 모형이다.

이 모형이 얼마나 정확한가, 진실에 가까운가를 나타내는 중요한 척도는 예측 능력이다. ((이미 결과를 아는 상태에서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 설명만 가능한 것은, 음..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아폴론의 화살: 예측의 과학과 모든 것의 미래> (Apollo’s Arrow: The Science of Prediction and the Future of Everything, 번역 제목 <거의 모든 것의 미래>)에서 모형이라는 단어가 그토록 많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거의 모든 것의 미래8점
데이비드 오렐 지음, 이한음 옮김/리더스북

수학 모형의 어제와 오늘

그러니 1부에서 그리스 철학자부터 복잡계 이론까지 과학의 “역사” 이야기만 나온다고 너무 투덜거리지 말자. 서론에서 날씨와 건강, 경제의 “미래” 예측을 다루겠다고 선언하여 기대감을 잔뜩 올려놓고는 다시 옛날 이야기부터 시작하더라도 말이다.

1부 <과거>에는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모형에 수(數)의 개념을 도입한 피타고라스의 전통으로부터 천체 관측 결과를 설명하는 모형의 발전을 거쳐 (갈릴레이, 튀코, 케플러)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의 근본 원리를 찾아낸 뉴턴, 자신감이 극에 달한 순간 겸손을 가르친 카오스(혼돈) 이론과 복잡계 이론까지의 역사가 서술되어 있다.

그 이야기를 따라오는 사이에 어느덧 모형이라는 단어가 친숙해졌을 것이다. 역사를 통해 모형의 과학적 의미와 여기에 수학이 어떻게 개입하는지를 배웠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현대의 예측 모형을 살펴볼 차례다. 지금부터는 미래 예측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기계적인 모형을 이용해서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은 비에르크네스가 기상학을 점성술로부터 자연과학으로 빼앗아 오기 위해 요구한 두 가지에 정리되어 있다.

1. 초기 시간의 대기 상태에 관한 충분히 정확한 지식. 2. 대기의 한 상태가 다른 상태로부터 발달하는 법칙에 관한 충분히 정확한 지식, 178p

즉, 현재 상태를 알고 상태가 변화하는 규칙을 알면 미래를 계산할 수 있다는 가정인데, 2부의 내용은 날씨와 건강, 경제라는 비슷한 듯 서로 다른 세 분야에 이 원리를 적용하면 미래를 내다볼 수 있을까에 대한 고찰이 주를 이룬다. 각 분야의 초기 조건과 법칙은 대충 아래 표와 같다.

미래 예측의 어려움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해석하면 그가 어떤 질병에 걸릴지, 수명이 얼마일지 미리 알 수 있을까? 주식과 상품의 가격 변동을 예측하는 법칙이 있을까? ((주가 그래프 관련해서는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투자 아이디어>보다 새로운 내용은 없다.)) 저자 데이비드 오렐은 수학을 전공하고 예측모형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날씨 모형과 유전자 해독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는 미래 예측 모형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은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각 도메인별로 고유한 어려움(ex. 측정 문제)도 물론 있지만 진짜 본질적인 문제는 모두 공통된다. 그 중 하나는 미시적인 세상에서 수많은 요소들이 상호작용한 결과가 거시적으로 봤을 때 깔끔한 수식 하나로 표현되지 않는 데서 발생한다. 울프람이 셀룰러 오토마타(cellular automata)의 인생게임(game of life)으로 보여주었듯이, 매우 단순한 규칙을 따르는 계라도 미래를 항상 예측할 수는 없다. ((미래가 정해져 있더라도 마찬가지. 그리고 여기서 얘기하는 것은 미래가 정해져 있는가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모형을 정교하게 만든답시고 파라미터를 추가하면 또 그만큼 미지의 변수가 많아지고 계산량은 증가한다. 결국 미래를 알고 싶으면 현실과 똑같은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서 시뮬레이션을 돌리는 수밖에 없나 하는 질문에 이르는데, 사실 그것조차도 아직은 이른 고민이다. 대기 같은 물리계는 어느 정도 법칙을 발견했다지만, 유전자의 발현이나 증권 가격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시뮬레이션할 규칙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후 – 유전자 – 경제. 앞에서 뒤로 갈수록 사람이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여지가 큰 분야이고, 그만큼 계의 행동이 다이나막해서 모형화 작업이 넘어야 할 산은 험난하기만 하다.

그러면 이 책의 결론은 뭘까? <거의 모든 것의 미래>란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일까? 호기심을 안고 3부로 넘어간다.

모형의 한계, 대안은?

지금까지 얘기한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예측할 수 있다는 반전을 기대했다면 미리 실망하자. ((그런 야심가를 찾는 이에게는 <프리딕셔니어 미래를 계산하다>를 권한다.)) 저자 오렐은 단기예측을 다룬 2부에 이어 3부에서는 장기예측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날씨 – 경제 – 건강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면 모형의 오차는 더욱 커져서 사실상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게 그의 견해다. 그렇다면 결론은?

기후 온난화 문제를 한참이나 논의한 끝에 나오는 처방을 보고는 솔직히 조금 당황했다. 이미 철 지났다고 여긴 가이아 이론을 꺼내 들었기 때문이다. 왠지 비과학적으로 보이는 이 이론을 두고 저자는 “우리는 지구가 살아 있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 그것은 그저 사물을 보는 유용한 방식일 뿐이다” 라면서 세간의 오해는 그저 잘못된 비유에서 비롯한 것이라고 옹호한다. 오히려, 효율적 시장가설도 따지고 보면 ‘시장에 대한 신격화’라면서 ‘미래를 멀리 내다보면서 가치를 계산하는 능력’이라고 부르면 어떻겠냐고 반격한다.

핵심은 가이아 이론이 맞냐, 지구온난화가 정말 올 것이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그동안 예측의 대상으로 바라봤던, 수동적이라 여겼던 계가 사실은 내부적으로 역동적인 질서를 유지하며 외부환경의 변화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는 유기 생물체와 비슷하다고 보는 관점으로의 전환이다.

책의 역할은 여기까지다. 저자에게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동의하더라도 독자 개개인의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미래 예측이란 부질없는 것이라고 내팽겨칠 수도 있고, 저자의 긴 설명에도 불구하고 미래의 똑똑한 수학자, 과학자들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기대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건, 다른 사람도 아닌 수학 전공자가 지구를 사람에, 인류를 질병에, 온난화 논쟁을 의사와 관리자 간의 논쟁에 비유하면서 어설픈 미래 예측보다 지금 우리의 선택과 행동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이 책의 결론은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마지막으로, 이런저런 한계를 지적받았음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수학 모형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음미해보자.

수학모형은 언제나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언어와 마찬가지로 모형도 세계를 이해하고, 우리의 사고를 조직하고, 서로 소통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모형은 가상의 실험을 수행하고 가능한 시나리오들을 살펴보며, 약점을 드러내는 일을 돕는다. 무엇보다도 모형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을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442p

소감

미래 예측에서 모형이 갖는 의미와 한계를 쉽게 잘 풀어놓았기 때문에 예측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입문서로 좋은 책이다. 모형을 설명하는 틈틈이 천체 관측 모형의 역사나, 일기예보 모형, 유전자, 투자 이론, 지구온난화에 대한 짭짤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도 장점이다. 반면, 주석까지 포함하면 500 페이지가 넘는 이 책이 과연 이렇게까지 길어야 할까, 더 요점만 간단히 추릴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은 있다.

노란 형광펜

  • 회의주의자들은 두 가지를 고려하지 않았다. 컴퓨터의 속도가 엄청나게 증가한다는 점과 폰 노이만이 새로 고용한 J. G. 차니 같은 수학자들이 방정식을 단순화하리라는 것을 말이다. 185p
  • 두 모형이 비슷한 수준으로 틀린다고 해서 둘 다 옳다는 의미는 아니다. 둘이 비슷한 방식으로 잘못된 것일 수도 있다., 215p
  • 예측은 언제나 단지 미래를 예견하는 차원이 아니라 미래를 통제하는 문제였다., 240p
  • 실질적으로 모든 형질은 양육과 천성 간 상호작용의 결과다., 257p
  • 현대 과학자들은 기후계, 더 나아가 생명 자체를 힘겹지만 다룰 수 있는 수학문제로 본다. 중력 같은 자연의 근본적인 힘들이 수학방정식에 따르는 듯한 광경은 정말 놀랍다. 하지만 생명 같은 복잡한 창발성은 반드시 그렇지 않다. 이블린 폭스 켈러가 말했듯이 “자연을 알 수 있다는 믿음은 속을 들여다보면 이론과 현실 사이에 일대일 대응관계가 있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411p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