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 마감시간을 정하라

by SL

내용을 읽어보지 않아도 제목만으로 느낌이 오는 책이 있다. 서점 나들잇길에 우연히 만난 <모든 일에 마감일을 정하라>도 그런 책 중 하나다. 경험상, 외부 상황에 의해서든 스스로 뜻에 의해서든 일을 언제까지 끝내겠다고 명시화해두는 것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 미적거리며 마냥 일을 미루는 걸 방지하면서도 사소한 문제에 빠져 하염없이 늘어지지 않도록 막아준다. 그리고 적당한 수준의 제약은 긴장감과 상상력을 자극하여 창의적인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유도한다. 입버릇처럼 너무 바쁘다고 투덜거리지만 정작 시간이 너무 많으면 오히려 일이 잘 안된다는 건 내게 흥미로운 현상이다. 그런데 어디 시간뿐일까.

무슨 자원이건 양이 무한하면 그 소중함을 잊어버린다. 정말로 무한한 자원이면 그래도 된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착각에 빠져서 혹은 잊고 방치하는 것들이 사실은 무한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언제까지나 유지될 것이고, 내 곁에 있는 것들은 언제까지나 거기 있을 것이라고 착각까지는 안 하겠지만 그렇다고 그것들이 언젠가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도 좀처럼 안 하며 살지 않던가.

  • 대학원 연구실을 내 집 삼아 살 때는, 동이 틀 때까지 흥미로운 연구 주제에 관해 얘기할 체력과 동료가 당연한 줄 알았다.
  • 몇 년 전 서울에서 권투를 배울 때는, 집에서 3분 거리에 체육관이 있는 게 당연한 줄 알았다.
  • 지금은, 퇴근 후 심심할 정도로 한가한 시간이, 아무 때나 피아노 치러 갈 수 있는 학원이, 또 빨래를 해주는 회사가 당연한 줄 안다.

현재 사용가능한 자원도 임의적인 제약, 이를 테면 언제까지만 쓸 수 있다는 시간 제한을 두면 한결 다르게 보인다. 인터넷 정액제 쓸 때는 무심코 넘기던 웹페이지 하나가 종량제 쓸 때는 무척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처럼, 지금 곁에 있는 사람과 앞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을 실제로 세어보면 그 소중함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

이번 주는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것들을 찾아서 감사하는 기간으로 삼을까 싶다. 좋은 계획을 세우는 일은 주어진 자원의 유한함을 깨닫는 데서 출발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