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중국 북경 여행: 둘째날

by SL

물리적으로는 여행의 둘째날, 논리적으로는 첫째날인 7월 24일 오늘의 목표는 베이징 맛보기다. 만리장성을 노리기엔 경험치가 부족하고, 가장 보고 싶은 천안문 / 자금성(=고궁박물원) 관광을 하기엔 길을 잃고 헤맬까 두려운 첫날. 그래서 안 보기엔 섭섭하지만 꼭 보지는 않아도 괜찮은 곳들 중심으로 코스를 짰다.

오전에 원명원과 이화원을 둘러본 뒤 점심으로 훠궈를 먹고, 오후에는 판자위안 골동품 시장 ((일요일이 가장 구경하기 좋다고 들었다.)), 천단공원, 첸먼다제, 다자란제, 유리창 이렇게 보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계획은 절반의 성공 + 알파로 끝났다.

원명원

베이징 서북부에서 보기로 한 두 곳 중 하나인 원명원은 황실의 정원이었다. 대륙의 유원지답게 규모에 장난없기 때문에 볼거리가 많다는 서양루로 직행했다. 아래는 가는길의 호수와 연꽃. 안개가 끼어서 신비한 분위기를 풍긴다.

원명원 입구에서 서양루를 찾아가는 데만도 24분은 걸린 것 같다. 청나라 시대에 서양식 정원을 꾸몄다고 해서 이름이 서양루다. 들어가자마자 왼쪽에 보인 황화진이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은 건물이라는데, 그 앞 미로에서 사람들이 헤매고 있었다. 나도 오랜만에 동심으로 돌아가 신나게 돌아다녔다. 하마터면 컨택트렌즈가 빠져서 이날 여행 종칠 뻔했지만 어쨌든 무사했으니깐..;;

사람들은 서양식 분수 대수법과 이를 황제가 관람하던 관수법 쪽에 가장 많이 몰려 있다.

이화원

원명원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만 가면 현존하는 중국 최대의 황실 정원 이화원이 나온다. 베이징 여행 코스에서 빠지지 않는 바로 그곳이다. 사전 준비할 때는 원명원과 비슷한 줄 알았는데, 실제로 가보지 훨씬 볼거리가 많았다. 그리고 관광객도.

역시나 매우 넓기 때문에 전부 보겠다는 욕심은 애초에 버렸고 가이드에서 소개한 곳 중 보고 싶은 데를 중심으로 돌아다녔다. 북궁문으로 들어가서 만수산, 보운각, 불향각, 배운전, 장랑을 구경하며 인공 호수 곤명호로 나왔다.

잔뜩 찌푸려 있던 구름 사이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 게 바로 이 무렵이다. 우산 호텔에 두고 나왔는데… 처음에는 지나가는 비인 줄 알고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낌새가 심상치 않아서 결국 20위안을 주고 비옷을 샀다. 아이폰과 카메라를 가방 안쪽에 안전하게 넣고, 그 다음으로 여행 가이드북을 챙겨넣고 비옷을 입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왔다. 비가 그쳐가고 있었다.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아. 그날 저녁에 비 또 왔거든.

아무튼 이화원을 나와서 인력거를 타고 가까운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인력거라고 해서 내심 사람이 달리는 걸 기대했는데, 그건 아니고 자전거 뒤에 의자 달린 마차 같은 형태였다. 타기 전에 얼마냐고 물었을 때 손가락 2개를 내보이길래 ‘와 싸다’ 하면서 신나게 갔는데, 도착했더니 20위안을 달라고 했다 -_- ‘그런 게 어딨어’란 말이 목끝까지 올라왔지만 어쩌겠어. 괜히 바가지 쓴 기분을 뒤로 하고 오늘의 점심을 먹으러 간다. 메뉴는 바로 중국시 샤브샤브 훠궈. 맛있는 식당을 책에서 미리 찾아 뒀다.

민바오 훠궈성

훠궈가 주문하기 까다롭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메뉴가 한글로 되어 있고 또 한국 교민들 사이에 유명하다는 안내책자를 믿고 민바오 훠궈성이라는 식당을 찾았다. 힘들게, 정말로 힘들게 찾아갔는데, 이게 뭐야. 손님은 한 테이블밖에 없고 (그때 시각이 오후 4시이기는 했지만) 말이 전혀 통하지 않은 종업원은 나를 멀뚱멀뚱 바라보더니 메뉴판을 갖다줬다. 정말 한국어로 쓰여 있었다. 근데 그게 다였다. 그냥 나오기도 뭣하고 힘들게 찾아간 게 아까워서 소고기, 양고기, 버섯, 칼국수를 주문했다. 아래 사진은 그 결과.

고기가 너무 많아서 취소되냐고 몸으로 물었더니 그 종업원도 몸으로 화답했다. 안 된단다. 열심히 먹었으나 결국 반도 못 먹고 나왔다. 위안이라면 저렴한 가격과 후식으로 받은 서주바 비슷한 아이스크림 뿐. 나의 첫 중국 음식 도전은 이렇게 끝났다.

빗속의 첸먼다제와 다자란제

원래 계획대로라면 이제 판자위안 골동품 시장을 가야 한다. 하지만 멀기도 하거니와 도착할 때쯤이면 시장이 파할 것 같았다. 게다가 천단공원은 이미 늦었음. 그래서 과감히 계획을 수정하여 곧장 천안문광장 남쪽 정양문(혹은 전문이라고 부른다) 남쪽의 큰 거리인 첸먼다제와 다자란제를 가기로 했다.

고백하건대 이때까지만 해도 이날의 여행은 실패라는 생각에 많이 풀죽어 있었다. 갑자기 비가 오질 않나, 식사는 엉망이질 않나, 계획 달성률마저 50%가 될랑말랑 했으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첸먼다제에 도착하는 순간 완전히 사라졌다. 여행책에서 야인시대 세트장 같다고 한 말이 딱 어울리는 그 거리의 무엇이 내 마음을 움직였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때는 어찌나 신이 났는지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도 아랑곳하지 않고 열심히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첸먼다제랑 연결된 다자란제에서는 역사와 전통의 동인당 약방(내가 갔을 때는 문을 닫고 있었지만), 중국 최초의 영화관이라는 대관루 등을 찾아다니며 셔터를 눌러댔다. 역시나 폭우를 뚫고.

라오서차관

마지막 코스로 라오서차관이라는 찻집 겸 공연장을 찾았다. 여기는 2층은 찻집이고, 3층은 공연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곳으로, 한 시간 반 동안 만담 / 경극 / 묘기 / 변검 등의 공연을 10 ~20분씩 짧지만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가격은 좀 비싸서 가장 안 좋은 자리(뒷자리)가 180위안, 좋은 자리(앞자리)는 320위안이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마지막 공연이 끝나가는 시간이었으며, 적어도 7시 50분까지는 왔어야 한다고 했다.

카운터 직원이 영어를 못하는데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 거기서 우연히 만난 중국인 덕분이다. 가족과 함께 공연을 보러 온 듯했는데, 내가 한국인인 걸 알고는 통역을 겸해 이런저런 설명을 해줬다. 그러다가 그 친구가 한국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해서 서로 연락처를 나누고, 시간이 되면 다음날 그 시각 그 장소에서 또 만나기로 하고 작별을 고했다. 예정대로라면 나는 내일 그 시각에 거기서 10분 거리인 천안문 광장에 있을 테니까 :)

둘째날 여행은 그렇게 끝이 났다.

오늘의 깨달음

  1. 베이징에는 지하철이 잘 깔려 있어서 (만리장성을 제외한) 주요 관광지는 지하철로도 갈 수 있다.
  2. 관광지의 수많은 인파 중에는 외국인도 있지만 대부분이 지방에서 올라온 중국인으로 보였다. 내수의 든든함이 느껴졌다.
  3. 한류의 힘을 체감.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회사가 있으면 좋은 것처럼 한국 문화가 외국에서 인기있으니까 좋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