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이 뇌에 미치는 영향

인터넷의 부정적인 면을 다룬 책 두 번째는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원제 The Shallows: What the Internet Is Doing to Our Brains)』이다. 『생각 조종자들』이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사용자 프로파일링과 개인화의 부작용을 다루었다면,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상호작용성과 하이퍼링크 같은 인터넷(정확히 말하면 월드와이드웹) 고유의 특징이 인간 두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다양한 실증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멀티가 아닌 본진에 드랍쉽을 떨군 셈이다. 그 드랍쉽을 움직이는 힘은 뇌의 가소성(Plasticity)이라는 연료에서 나온다.

뇌의 가소성

이제는 당연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우리의 뇌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한다. 어떤 경험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영향을 받아 스스로 구조를 바꾼다. 바이올린 연주자 그룹과 악기를 연주한 적 없는 그룹에서 오른손잡이를 뽑아 뇌를 비교한 에드워드 토브의 연구가 좋은 근거를 제공한다. 바이올린을 켜려면 왼손으로 줄을 눌러야 하므로 왼손 신호를 처리하는 신경이 많이 발달할 수밖에 없다. 토브는 실험자들이 양쪽 손으로 각각 줄을 눌렀을 때 그 신호를 처리하는 뇌 영역을 관찰했다. 그 결과 두 그룹에서 오른손 신호를 처리하는 감각피질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왼손 신호를 처리하는 영역은 바이올린 연주자들이 훨씬 넓다는 게 밝혀졌다. 게다가 어른이 된 뒤에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배운 사람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는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명확하다.

우리의 경험은 뇌에 물리적인 변화를 가져오며, 이 변화는 어른아이 가리지 않고 언제나 일어난다.

이 책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 못지않게 어떤 도구를 사용하는지가 뇌에 큰 영향을 끼치며, 인터넷이라는 도구는 우리 뇌 구조에 영향을 줘서 특정한 능력을 발달시킬 수도 있지만 예전에 가졌던 다른 능력은 도태시킬 수도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인터넷이 인류의 뇌 구조 그리고 생각하는 방식을 처음으로 바꾼 것은 아니다.

책과 읽기의 역사

어떤 도구는 단순히 편리함을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책에서 예로 드는 -인터넷을 제외한- 세 가지는 바로 지도와 시계, 문자다. 저자는 다양한 출처를 인용해가며 이 도구들이 우리 생각의 틀을 바꿨다고 주장한다. 먼저 지도.

지도는 정보를 저장하고 전파하는 수단일 뿐 아니라 보고 생각하는 특정한 방식을 구체화하는 매개체다. 지도 제작이 발전할수록 지도 제작자가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는 독특한 방식까지 함께 전파되었다. 사람들이 지도를 더 자주, 가까이 사용할수록 사고는 지도의 언어로 현실을 이해하게 되었다., 69p

다음으로 시계.

기계화된 시계는 스스로에 대한 우리의 시각도 바꾸어놓았다. 그리고 지도와 마찬가지로 시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도 변화시켰다. 시계가 동일한 기간 단위의 조합으로 시간을 재정의하자 우리의 사고는 구분과 측정이라는 체계적인 정신적 작업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72p

문자는 특히 중요한데, 암묵적인 앞의 두 가지에 비해서 매우 직접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대화에서부터 구텐베르크에 이르기까지 문자와 책이라는 도구의 발전과 그에 따른 읽기의 변천사를 보면, 우리가 지금 책을 읽고 생각하는 방식이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묵독은 고대에는 알려지지 않은 형태였다., 95p

필경사들은 문장 내 단어의 순서에도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말로 이루어지는 언어에서 의미는 주로 억양이나 화자가 음절들 중 어디에 강세를 주느냐 등을 통해 전달되었고, 이렇듯 구술의 전통은 글쓰기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중세시대 초기까지 책에 쓰여진 글을 해석함에 있어 독자들은 단어의 순서를 의미 파악의 기준으로 사용할 수 없었다. 그 기준은 아직 발명되기 전이었다., 96p

뇌가 글을 해석하는 데 더 능수능란해지면서 과거에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매우 까다로운 과정이었던 것이 기본적이며 자동적으로 행하는 과정이 되었고, 뇌는 남는 힘을 의미 해석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깊이 읽기”라고 부르는 방식도 가능해졌다., 99p

책이라는 기술과 독서라는 행위가 뇌가 “집중력”을 단련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는 얘기다.

그럼 인터넷이라는 도구는?

인터넷은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 뿐만 아니라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또한 바꾸어 놓았다. 아래의 내용을 보자.

연구자들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는 책과 같은 문서를 읽을 때와는 아주 다른 형태의 뇌 활동을 보여줌을 발견했다. 책을 읽는 이들은 언어, 기억, 시각적 처리 등과 관련한 부분에서 활발한 활동을 보였으나 문제 해결이나 의사 결정과 관련한 전전두 부분은 크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반면 숙련된 인터넷 사용자의 경우는 웹 페이지를 보고 검색할 때 이 전전두 부분 전반에 걸쳐 집중적인 활성화를 나타냈다. (중략) 인터넷 사용자들의 집중적인 뇌 활동 양상은 깊은 독서 등, 지속적인 집중을 요하는 행동들이 온라인에서는 왜 그렇게 어려운지를 설명해준다. 온라인에서는 수많은 찰나의 감각적 자극을 처리하며 링크들을 평가하고, 또 관련 내용을 검색할지 말지를 선택해야 하는 필요성 때문에, 방해가 되는 문서나 다른 정보로부터 뇌를 분리시키는 동시에 지속적으로 정신적 조정과 의사 결정을 해야 한다., 182 ~ 183p

다시 말해, 정보의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 우리는 다시 단순한 정보 해석기로 돌아간다. “깊이 읽기” 발명 전 시대에는 뒤죽박죽 단어 순서와 띄어쓰기 무시 같은 요소들이 글의 해석을 방해했다면, 이제는 현란한 웹페이지와 산만한 하이퍼링크들이 알게모르게 수많은 의사결정을 요구하며 뇌를 혹사시킨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대가로 돌려받는 것은 산만해진 뇌. 쏟아져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뇌의 작업 기억 한계를 위협하면, 우리는 이 정보를 소화시키는 데 실패하고 소음과 신호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결국 인터넷의 화려함과 자유로움의 종착지는 뇌의 과부하와 산만함이다.

인터넷에서 길고 어려운 글이 잘 안 읽히는 이유가 -종이가 아닌- 컴퓨터 모니터에서 보는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나 보다.

기억의 재발견

검색이 인터넷만의 고유한 특성은 아니지만, 질문에 대해 즉각적으로 답을 내놓는 편의성은 기존의 방식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따라서 이제는 암기 따위의 구시대적인 용도로 뇌를 낭비하지 말고 대신 창의적인 생각에 투자하자는 얘기가 설득력있게 들린다. 이에 대해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작업 기억과 장기 기억을 혼동하는 데서 오는 오해라는 것이다. 하드 디스크에 비트로 저장되는 정보와 달리 대뇌 피질에 저장되는 기억은 유기체적인 성격을 지닌다.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는 저장된 데이터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는 바로 그 행동은 새로운 시냅스의 말단을 만드는 단백질 형성을 포함하는 모든 강화 과정을 다시 되풀이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략) 우리가 다시 이 기억을 강화할 때 새로운 연결의 조합, 즉 새로운 문맥이 생긴다. 조셉 르두가 설명했듯이 “기억을 하는 뇌는 기억을 처음 형성하는 그 뇌가 아니다. 오래된 기억을 현재의 뇌가 이해하기 위해 기억은 업데이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79p

라고 한다. 장기 기억을 저장하고 확장하는 행위는 그 자체로서 우리의 지적 능력을 키우고, 다양한 맥락 속에서 생각들을 연결시키는 데 도움을 준다는 말인 것 같다. (기억의 메커니즘이 아직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은 탓인지 이 부분 설명이 명쾌하지는 않은 느낌이다.) 그리고 두말할 것도 없이 인터넷은 그러한 기억 강화에 필수적인 집중에 훼방을 놓는 말썽쟁이다.

진짜 문제

이미 지도를 보고 시계를 차고 책을 읽게 되면서 뇌가 변해왔다면, 인터넷 때문에 뇌가 또 바뀌는 게 무슨 대수일까? 사실, 아직 진행 중인 변화에 대해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섣부를지 모른다. 이 의문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한 마디로 기회비용이다.

도이지는 “정신적인 기술 연마를 멈출 경우 우리는 단지 그것을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기술을 담당하는 뇌 지도 내 공간은 우리가 훈련하는 다른 기술에 자리를 내어준다”고 말한다. (중략) 뉴런과 시냅스는 우리 사고의 질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뇌의 유연성이라는 특성 속에 지적 쇠퇴의 가능성이 이미 내재해 있는 셈이다., 62 ~ 63p

공짜는 없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덕분에 계발되는 능력도 분명 있지만 동시에 자리를 빼앗기고 약화되는 능력도 있다. 우리가 별생각없이 웹을 항해하는 동안 잊혀져 가는 소중한 것이 있지는 않은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노란 형광펜

  • 시냅스의 가소성은 수세기 동안 경쟁해온 사고방식에 대한 두 가지 철학 사조인 경험주의와 이성주의의 조화까지 이끌어냈다., 52p (유전자가 시냅스의 기본 구조를 만들어놓지만, 자라는 동안 배우고 행동하는 것에 따라 이 구조가 바뀐다. 이로써 본성과 양육 논쟁이 화해할 수 있다는 이야기)
  • 파스쿠알 레온은 피아노를 연주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을 모아 단순한 음의 멜로디를 연주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런 다음 실험 참가자들을 두 개의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이후 5일 동안 키보드로 멜로디를 연습하도록 했다. 또 다른 그룹은 같은 기간 동안 건반을 건드리지 않고 멜로디를 연주하는 상상만 하도록 했다. (중략) 그는 피아노를 치는 상상만 했던 사람들도 실제 건반을 친 사람들과 정확히 같은 종류의 뇌 변화를 보인다는 것을 알아냈다., 59p (마인드 트레이닝의 효과에 대한 검증)
  • 실험 결과 글을 익힌 이의 뇌는 문맹자의 뇌와 여러 측면에서 차별화됨이 밝혀졌다. 뇌가 언어를 이해하고 시각 신호를 처리하는 방식,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기억을 형성하는 방식 등에서 차이를 보인 것이다., 83p (컴퓨터 프로그래머와 비프로그래머를 비교해도 유의미한 차이가 있을까?)
  • 신경가소성에 대한 연구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형성하는 정신적 능력, 즉 신경 회로가 다른 목적으로도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115p (무언가를 익히는 것은 필연적으로 부수 효과(side effect)를 가져온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언가 선택을 할 때는 이러한 것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 뇌과학자들은 장기기억이 이해가 이루어지는 장소임을 발견했다., 185p
  • 우리는 도서관을 미디어 기술 중 하나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도서관은 분명 미디어 기술이다., 147p
  • 인터넷은 또한 물리적/정신적 행동의 반복을 권장하고, 반응과 보상을 전달하는 초고속 시스템, 즉 심리학 용어로는 긍정적 강화라는 시스템을 제공한다., 176p
  • 인터넷이 부추기는 지속적인 산만함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는, 일시적이고 의도적인 주의 돌리기와는 그 성질이 크게 다르다., 179p (그러니까 일한 뒤에 머리 식힌답시고 웹서핑하지 말고 그냥 산책을 하라구!)
  • 장기 기억의 형성은 생화학적인 변화뿐 아니라 해부학적인 변화도 수반한다는 것이다. 켄델은 이 같은 발견이 왜 기억 강화가 새로운 단백질을 필요로 하는지 설명해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백질은 세포 내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2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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