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밤 내가 자는 동안 무슨 일이?

by SL

그날 반가운 얼굴들과 술 한 잔 걸칠 때까지만 해도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경험한 절도 사건, 지금부터 그 내막을 공개한다.

2011년 11월의 어느날 밤. 시간이 너무 늦어서 가능한 교통수단이라고는 택시밖에 남지 않은 상황, 나는 기가 막힌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2만 원 넘는 돈을 길에 뿌리느니 그냥 근처 찜질방에 가서 자자.

그때까지만 해도 내 손에 들려있던 아이폰으로 근처 찜질방을 검색했다. 한밤 중에 몇백 미터를 걸어서 찾아간 그곳은 규모가 꽤 크고 근방에서도 유명한 곳인 듯했다. 안에 들어가니 삶은 계란에 식혜는 물론이고, 요거트 아이스크림을 파는가 하면, 자체 PC방도 있고 막 그랬다.

꽤 피곤했던지라 가볍게 몸을 씻고 아이폰이랑 이어폰만 챙겨서 찜질방 구석에 자리잡았다. 그리고 『나는 꼼수다』의 호쾌한 웃음 소리 속에 잠이 들었다. 폰은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였고, 시각은 아마 한 시에서 두 시 사이였을 것이다.

다시 잠을 깬 건 새벽 네 시 경. 이어폰은 여전히 귀에 꼽혀있는데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어폰 줄을 따라 내려간 손에 잡히는 건 뽀족한 연결잭 뿐. 마땅히 있어야 할 납작한 육면체가 없다! 놀라서 눈이 번쩍 떠졌다.

일어나 주변을 몇 번이나 살펴보고 옆 사람들 자리까지 확인해도 없다. 왠지 실감이 안 나서 다시 누워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고도 했다. 그런데 점점 맑아지는 정신과 조금씩 돌아오는 이성적 사고 능력. 누군가 훔쳐간 게 분명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일시정지와 분실 신고를 해야지. 폰과 연동 걸어놓은 서비스들 비밀번호도 바꿔야지. 그럼 일단 공중전화부터 찾자. 헐레벌떡 뛰어나오다가 발견한 문구.

“본 찜질방 내부에는 고객님의 안전과 분실 방지를 위해 CCTV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CCTV 모니터링실(실제로는 그냥 사무실이라고만 되어 있었다.)까지 가게 되었다. 내가 있었던 자리를 말하자 바로 그곳의 녹화 장면이 모니터에 나타났다. 근데 위치가 절묘하여 나의 상체 나오는데 폰이 있었던 자리는 사각이었다.

아무튼 그 카메라에 녹화된 비디오를 되감아 보기 시작했다. 내가 자는 모습을 직접 본 건 그게 처음이었지 싶다. 얌전하게 자는 듯하더니 갑자기 만세를 부르고, 얼굴을 만지고, 긁고 그러더군. 아,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2시 40분 쯤 어떤 뽀글머리 남자가 내 옆자리를 어슬렁거리는 장면이 잡혔다. 한 번 쓱 둘러보고 가더니 잠시 후 다시 와서 내 옆에 앉았다가 누웠다가 하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러기를 몇 분. 슬그머니 일어나서 그 자리를 떠났다. 교묘한 사각이기도 하고 CCTV의 해상도가 낮아서이기도 하고 정확하게 내 폰을 가져가는 모습이 잡히지는 않았지만 정황상 그가 분명했다.

그 사람의 행동을 추적해보니, 수상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처음 들어올 때부터 찜질방 내부를 돌아다니는 동안 CCTV가 있는 데만 가면 고개를 숙이거나 얼굴을 만져서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또 다른 사람들 근처에서도 내 자리에서 했던 것과 비슷하게 눕는 척하다가 곧장 일어나서 자리를 옮기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다른 피해자는 아직 그 사실도 모른 채 자고 있었다.

그렇게 몇 바귀를 돌고 난 뒤 당연하게도 그는 찜질방을 떠났다. 카운터에서 환불까지 받아나갔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바로 나가야 하니까 돈을 깎아달라고 한 모양이다. 결제는 당연히 현금, 또 카운터에 있는 동안에도 신발끈을 묶는 척하며 계속 CCTV를 피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초심자는 아닌 듯했다.

아무튼 도난 사실은 확인이 되었다. 직원이 물었다. “신고하시겠어요?” 그래서 물어봤다. “그러면 잡을 수는 있을까요?” “가능성이 없지는 않겠죠. 다른 데서 또 저러다가 잡히는 경우가 더러 있기는 해요. 하지만 폰을 찾을 확률은 없다고 보셔야 돼요.” “네, 신고할게요.”

잠시 후 경찰분들이 오셨다. 우리는 좀전에 확인한 CCTV를 보여주었고, 그들은 지켜보다가 주요한 장면에서 사진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나서 있었던 나와의 대화.

휴대폰 보험 들었죠?
네.
그러면 분실 확인서가 필요하겠네요.
그래요? (나는 몰랐는데, 이런 경우가 꽤 있는 듯했다.)
네. 같이 파출서 가서 신고하시면 발급해드릴게요.
너무 새벽이라서 지금 나가면 이동하기가 좀 곤란한데요…
아, 그럼 구체적인 사항 진술해주시면 발급해서 갖다드릴게요.

그렇게 내 개인 정보와 도난 정황, 휴대폰 정보를 알려드리자, 눈매가 날카로운 형사(?)님과 경찰복을 입은 두 분은 떠났다가 10분 후 분실신고 접수증을 들고 돌아오셨다. 새벽에 고생해주셔서 감사하단 말밖에 드릴 말씀이 없었다.

그 10분을 기다리면서 카운터에 있는 직원과 잠시 얘기를 나눴다. 환불받아간 그 파마머리 청년은 스무 살 쯤으로 무척 젊어보였다고 한다. (환불 받아가는 경우가 드물어서인지 꽤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 사람 꽤 경험이 많은 것 같더라, 나 말고도 다른 피해자가 있는 것 같더라, 뭐 이런 얘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시큰둥했다. 왜일까? 물어보니 이런 사건이 며칠에 한 번씩은 발생한다고 한다. 특이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지난 밤까지만 해도 자정이 넘은 시간에 마음놓고 길을 걸어다닐 수 있는, 이렇게 공공장소에서도 편하게 잘 수 있는 한국의 치안이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뭐 마냥 그렇기만 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최근에 새로 만난 사람들이 한결같이 좋기만 해서 낯선 사람들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내게 떨어진 경고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꽤 비싼 수업를 지불하기는 했지만, 방심이 위기를 불러온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