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량적 분석을 하면서 배운 것

by SL

나는 태생적으로 기록하고 티내기를 좋아한다. 이렇게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는 게 단적인 예다. 뿐만 아니라 매일 가계부를 쓰고, 운동 내역과 몸무게의 변화를 기록한다. 요즘은 내 기분과 감정 상태까지 기록해서 분석해볼까 그러고 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쓰려는 정량화가 이런 측정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직집적으로 측정되지 않는 것을 손에 잡히는 수치로 표현하려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면, 우리 삶이 그렇게 단순히 숫자로 표현되는 게 아니라는 반응이 종종 돌아오기도 하는데,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정량화 시도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 과정에서 우리가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며, 더 잘 생각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정량화의 문제는 우리가 인지하지 못할 뿐이지 일상 생활에서 수시로 맞닥뜨린다. 가령, 주말에 친구와 만나기로 했을 때, 어디서 만나 무엇을 먹을지 정하는 문제가 그렇다. 우리에겐 수많은 선택지가 있다.

  • 싼 걸 먹을까, 비싼 걸 먹을까?
  • 가깝고 익숙한 동네 맛집에 갈까, 전에 누군가 추천한 새로운 레스토랑에 갈까?
  • 멀지만 한적한 교외로 나갈까, 사람 우글대지만 교통이 편리한 시내로 갈까?
  • 기타 등등…

이 문제를 정량화한다면, 각 장소의 적절함/만족도를 수치로 표현하고 그중 가장 점수 높은 곳을 택하는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럼 먼저 적절함/만족도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를 뽑아내야 하는데, 그 답은 이미 위에 적은 질문 안에 다 있다. 비용. 접근성. 호사스러움. 일단 이 정도가 나왔다.

이제 각 선택지(즉 만날 장소)의 비용과 접근성, 호사스러움을 점수화 한 뒤에 이들을 합쳐서 그 선택지의 최종 점수를 결정하면 된다. 호사스러움은 다분히 주관적인 요소이므로 객관적인 점수화는 힘들고 개인이 적당히 알아서 정해야 한다. (물론, 호사스러움을 다시 세분화해서, 가령 직원의 친절도, 메뉴의 희귀함, 소파의 안락함 등의 합으로 정량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음식값과 거기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예측할 수 있으므로 비용과 접근성은 상대적으로 간단해 보인다.

복잡하게 하려면 그또한 얼마든지 가능하다. 예를 들어, 한끼 5천원하는 식당 A와 2만원하는 식당 B가 있을 때, A의 비용 점수가 B의 비용 점수보다 4배 더 높아야 할까? 만약 한끼 10만원하는 식당 C가 있다면, C의 비용 점수는 B보다 5배 더 높으면 충분할까?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한 끼 배를 채우는 데 5천원 이상 쓰는 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 P가 있는가 하면, 맛만 좋다면 2만원까지 쓰겠다는 사람 Q도 있다. P의 경우는 가격이 5천원만 넘어가도 점수가 급격히 떨어질 것이고, Q의 경우는 2만원까지는 그럭저럭 완만한 형태의 점수 그래프가 나올 것이다. 각자가 생각하는 식사 예산에 따라서 가격 대비 비용 점수 그래프는 다양한 모양을 띤다.

아무튼 어찌어찌해서 각 요소의 점수가 나왔다고 치자. 이제 이들을 합쳐서 최종 점수를 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각 요소의 중요성을 결정해야 한다. 어차피 소화되면 똑같은 밥을 먹는 데 돈을 쓰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 R이 있는가 하면, 인생에서 밥을 먹는 횟수는 한정되어 있으므로 식사는 의무가 아니라 누려야 할 기회라고 생각하는 사람 S도 있다.

앞에서 말한 5천원/2만원의 P/Q와 비슷해 보이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P와 Q는 가격의 변화에 민감하지만, 지금 얘기하는 R과 S는 가격 “점수”의 변화에 민감하다. ((서로 구분하기는 했지만 둘 사이에 상관관계는 분명히 있다.)) 극단적으로 얘기해서 비용의 가중치를 0.000001로 엄청 작게 해버리면, 비용 점수가 아무리 차이가 나더라도 최종 선택에는 별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반대로 가중치가 너무 크면, 사소한 가격차이가 너무 과장되어 약간의 비용을 절감하려다 오히려 좋은 기회를 날릴 수도 있다. 즉, 각 요소만 점수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요소의 중요도 역시 적절하게 수치화해야 한다.

써놓고 보니 참 당연한 얘기지만, 이로부터 배운 점을 몇 가지 써본다.

  1.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그와 관련된 요소를 최대한 찾아내야 한다. 억지스러운 게 있더라도 일단은 다 뽑아서 나열한다. 정 필요없으면 나중에 가중치를 0으로 해버리면 된다.
  2. 각 요소에 대한 자기만의 평가 기준을 만들고 그에 따라 점수를 매긴다. 그 과정에서 각 요소에 내가 얼마나 민감한지 생각해볼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점을 설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ex. ‘난 밥 먹는 데 얼마까지 쓸 준비가 되어 있는가?’) 중요한 점은 이런 생각을 명시적으로 해본다는 것이다.
  3. 마지막으로 개별 요소의 중요성을 결정한다. 이때 주의할 점은, 이미 갖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그 중요도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다. 예를 들면, 위의 예에서 음식의 위생에 대해서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한국의 식당 위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모든 선택지의 위생 점수를 엇비슷하게 주고 가중치도 그렇게 높게 책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경험을 돌이켜보면, 이집트나 중국을 여행하는 동안에는 물 하나 사먹을 때도 가격이나 시원함 뭐 이런 것보다는 브랜드와 위생에 훨씬 높은 가중치를 부여했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은 그게 이미 주어졌기 때문이지 그게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요구사항과 현재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가중치를 매기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그러지 않으면, 외국에서 한국에서와 동일한 기준으로 물을 사먹고 배탈이 나서 여행 기간 내내 화장실에서 괴로워하며 소중한 것은 잃고난 후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격언을 곱씹고 있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눈에 보이는 것을 평가하기는 그나마 좀 쉬운 편이다. 남이 해놓은 결과를 보고 ‘간단하네’라고 여기거나 그 작업에서 잘못된/아쉬운 것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던가. 물론 그런 것도 필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내가 지금 평가하고 있는 것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평가받고 있는 바로 그것이 이미 해결했기 때문에 당연하게 여겨지는- 를 찾아내는 안목 또한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소소한 정량화 경험을 통해서 얻은 작은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