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케인의 『콰이어트』를 읽고 얻은 세 가지

얼마 전에 40여 명 앞에서 발표할 일이 있었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의 발표는 이번에도 역시 두려움과 부담을 안겨주었고,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늦은 밤 예행연습과 설친 잠으로 인한 긴장 속에 아침을 맞이했다. 다만,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그렇게 힘들어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태도였다. 예전같으면 “아직도 이런 거에 긴장하면 어떡하냐”라거나 “그까짓 거 별거 아냐, 난 발표 잘하잖아” 같은 말로 스스로를 타박하거나 거짓된 자신감을 불어넣어서 상황을 극복하려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나는 원래 그런 발표에 많이 긴장하는 편이지. 이상한 게 아니야. 타고난 본성이고, 또 거기에는 장점이 있어” 라며 떨고있는 나를 위로하고, 감정을 솔직하게 받아들이기가 한층 쉬워졌다. 수전 케인(Susan Cain)의 『콰이어트: 시끄러운 세상에서 조용히 세상을 움직이는 힘』 (원제 Quiet: The Power of Introverts in a World That Can’t Stop Talking) 덕분이다.

이 책은 내향적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여러 사례 조사를 통해서 내향적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이 지닌 강점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느껴지는 저자 특유의 따뜻함은 마치 독자의 손을 꼭 쥐면서 ‘내향적이어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그동안 성격 탓에 상처받아왔을 내향적인 사람을 향한 설득력 있는 위로가 이 책에서 얻는 첫 번째 효용이다. 그런 면에서 『콰이어트』는 요즘 유행하는 힐링 서적 카테고리에 넣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대책없이 그냥 괜찮다괜찮다 위로하는 데 그쳤다면 내가 이렇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저자는 직접 발로 뛴 답사과 인터뷰, 연구 결과를 통해서 우리가 내향성의 가치를 보다 깊이 이해하고 오해를 해소할 수 있게 돕는다. 가령 이런 질문들. 왜 미국 사회에서 외향성과 쿨함이 그렇게 높게 평가받는가. 협업은 항상 창의성을 증진하고 성과를 높이는가. 또 공동 연습은 정말로 효과적인가. 리더에는 외향적인 사람이 적격인가.

그동안 외향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도 그래야 한다고 믿으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었던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사례와 조언이 풍부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내향적인 사람은 왜 내향적인가에 대한 대답이었다.

생후 4개월된 아기의 행동을 보고 그 아이가 장차 외향적인지 내향적일지 예측할 수 있을까? 제롬 케이건이라는 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답은 예스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아이들을 움직이는 모빌이나 알코올 냄새, 풍선 터지는 소리에 노출시킨 뒤 그 아이들의 반응을 지켜보면 된다. 기운차게 울며 팔다리를 휘저은 그룹과 조용하고 차분하게 있었던 그룹 중 어느 쪽이 내향적으로 자라날까?

외부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한 (가령, 울고 몸부림친) 아이들이 내향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상식과 어긋나는 듯하지만, 외부 자극에 민감하고 섬세하게 반응할수록 그 사람은 신중하고, 사려깊고, 잘못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고, 그것이 다시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책에서도 지적하듯이, 타고난 “반응성”이 한 사람의 성격을 결정짓는 유일한 요소는 아니겠으나 나의 평소 생각과 일치하는 설명이라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다. 내향성의 본질과 가치에 대한 통찰력어린 설명이 이 책에서 얻은 두 번째 배움이다.

책을 읽고나면 아마도 동의하게 될 텐데, 내향성이란 하나의 특징일 뿐 고치거나 개선해야만 하는 단점이 아니다. 내향성은 상황에 따라 발전에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오히려 장점이 되는 순간도 그만큼 많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건 내향성 뿐 아니라 외향성도 마찬가지다. 이 발견은 결국 다양성이라는 가치에 대한 존중으로 귀결된다. 각 기질은 저마다 장단점이 있으며, 환경과 상황에 따라 어느 것이 더 적절한지가 결정된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면 우리가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다양해지는 것이다.

저자가 살아온 미국 사회에서는 내향성이 과소평가되었다고 하지만 한국과 같은 동양 문화권에서는 그 반대일 수 있다. 요즘들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솔직히 수업 시간에 (별로 날카롭지 않은) 질문을 하는 학생에게 눈치를 주거나, 또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에게 ‘모난돌이 정맞는다’며 자제시키는 광경, 흔하게 볼 수 있지 않던가?

한 사람이 가진 외향성과 내향성을 인위적으로 배합해서 “평균인”을 양산하기보다는 고유한 특성을 가진 다양한 개인을 모아서 “균형잡힌 팀”을 구성하는 것이 더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바로 각 개인이 가진 고유함에 대한 존중이다. 다양성의 가치, 이것이 『콰이어트』에서 얻은 마지막 교훈이다.

노란 형광펜

  • 200명이 앉아 있는 강의실에서라면 절대로 손을 들지 않을 사람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2천 명, 아니 200만 명이 보는 블로그에 글을 쓰기도 한다., 109p
  • 삶의 비결은 적절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군가에는 등불을 켠 책상이 그런 장소일 것이다., 40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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