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하는 즐거움: 과학적으로 생각한다는 것

by SL

과거에 천재들이 이루어놓은 업적은 절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이해하는 범위에서) 그들의 성취는 어려운 문제를 우아하고도 단순하게 해결해버려서 오히려 그 가치와 난이도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같은 보통 사람은 그런 업적보다는 천재성을 보여주는 일화에 더 매료되곤 한다. 전산학 쪽에서는 특히 폰 노이만이 그런 동경심을 많이 자아낸다.

그런 천재들 중에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어떤 문제든 그만의 독특한 관점으로 해석하고 설명한다는 점에 있다. 권위나 명예에 미련을 보이지 않는 초탈함, 물리학자란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 금고털기 일화 등도 유명하지만, 내가 그의 책을 찾아읽고, 또 보지 않으면서도 물리학 강의 같은 책을 구입해두는 것은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생각을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파인만의 강의와 인터뷰 등을 묶은 『발견하는 즐거움』을 무척이나 즐길 수 있었다.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과학 그 자체에 대한 것이다. 과학이란 무엇이며, 자신은 과학을 어떻게 배웠는지, 또 과학의 가치는 어떤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보통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서 쉽게 얘기해준다. 모든 사실을 의심해서 경험으로 검증하고, 법칙은 언젠가 뒤집어질 수 있는 잠정적인 가설이라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며, 지식 간의 모순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합성을 유지하되, 그런 사고방식을 과학 공부를 할 때뿐만 아니라 내 삶 속에서, 사회 현상을 바라볼 때에도 적용하자는 게 이 책을 통해 얻은 배움이다.

또한,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과학적 사고를 어린 파인만에게 가르친 아버지의 교육 방식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우리는 종종 이름을 아는 것으로 배웠다고 착각을 한다. 어제 길가다가 본 새의 이름이 무엇인지, 갯벌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현상을 무어라 부르는지,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저 이름을 알았을 뿐인데, 그걸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시험지에 그 명칭을 쓰면 점수를 받는 교육방식의 영향이라고 둘러댈 수도 있겠지만, 끊임없이 “왜?”를 묻는 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해결해나가는 탐구심의 가치에 스스로 고개를 돌리고 있지 않았나 반성해본다.

마지막으로, 읽다가 움찔하면서도 공감했던 부분이 있다. 다음은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의 사고원인을 조사한 후 파인만이 제출한 보고서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 원인이 완전히 이해되지 않는다면, 다음 비행 조건에서 전보다 훨씬 심하게 세 배쯤 부식되는 일이 없을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경우마다 특이한 편차가 있는데도 당국은 그것을 이해하고 확신한다고 스스로를 속였다. 부식을 계산하기 위한 수학적 모델을 만들기도 했다. 이것은 물리적 이해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경험적인 곡선 맞추기curve fitting에 기초한 모델이었다. (중략) 로그 그래프가 직선이 되기 때문에, 부식의 정도는 열의 0.58 거듭제곱에 따라 결정되는 것으로 가정되었다. 0.558이라는 값은 최적 맞춤에 따라 결정되었다. (중략) 수학 모델을 사용할 때는, 모델의 불확실성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194 ~ 195p (강조는 내가)

데이터 분석을 할 때, 모형을 만든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물리학자가 자연 현상을 관찰한 뒤 원리를 밝혀내는 것처럼 작업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복잡한 현상 아래에 숨어있는 진실을 밝혀내기보다는 적당한 숫자(피처Feature)를 뽑고 그들간의 -인과관계가 아닌- 상관관계에 의지해서 작업할 때가 많은데, 그때 느꼈던 찜찜함을 들킨 기분이 든 것이다. 이른바 빅데이터라 불리는, 특히 자연이 아닌 사람과 관련된 대용량 데이터를 다룰 때에는 기존에는 없던 어려움이 있고 또 그에 걸맞는 방법론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기술만 하기보다는 이를 설명하는 원리를 밝혀냄으로써 더 깊은 이해와 통찰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데이터 과학자(Data Scientist)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노란 형광펜

  • 여러분은 어떤 개념을 가르쳤나요, 아니면 정의만을 가르쳤나요? 나는 그것을 판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이렇게 실험해 보세요. “방금 배운 말을 쓰지 말고, 너희들이 방금 배운 것을 다시 말해보라.”, 61p
  • 이때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폰 노이만이 내게 해준 얘기가 있습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세계에 대해 내가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폰 노이만의 충고 덕분에 아주 강했던 사회적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그래서 전보다 훨씬 행복해졌지요. 오늘날 내가 적극적으로 무책임해지게끔 씨를 뿌린 사람이 바로 폰 노이만입니다!, 115p
  • 우리가 사는 환경이 그저 비과학적인 게 아니라, 심하게 적극적으로 비과학적이라는 것입니다. 갈릴레오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목성이 위성을 가진 행성이지 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점성술사들은 어떻게 되었소?”, 139p
  • 제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결정한 시점에서는 딱히 어떤 잘못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저는 숙고해 보았고, 나치가 그걸 가지면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 것은 옳았습니다. 잘못은 독일이 패전한 후에 있었습니다. (중략) 저는 그 일을 시작하게 된 당초의 동기가 사라졌다는 것을 따져보지 않았어요. 그래서 저는 커다란 교훈을 배웠습니다. 뭔가 아주 강한 이유로 어떤 일을 시작했으면, 이따금 당초 동기가 아직도 유효한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88p
  • 솔로문 군도의 원주민들은 전쟁 중에 군인들을 위해 온갖 물자를 실어 나르는 비행기를 보았지만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들은 비행기 숭배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활주로 비슷한 것을 만들어놓고 활주로를 따라 불을 지펴 유도등을 흉내냅니다. 이 불쌍한 원주민들은 나무 상자 안에 앉아 나무로 만든 이어폰을 끼고 대나무 막대 안테나도 달고, 고개를 끄덕끄덕합니다. 그들은 나무로 레이더 돔도 만들어놓고, 비행기가 자기들에게 화물을 싣고 오길 바랍니다. 그들은 행동을 모방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한 일입니다. 현대의 많고 많은 분야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활동들이 이런 식의 과학입니다. 마치 곡예비행 같습니다., 300 ~ 301p

꼬리에 꼬리를 무는 책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