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 DNA로 엮은 이야기

by SL

모든 사람이 인간에 대한 저마다의 관점이 있듯이 학문 분야에 따라서도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관심을 갖는 각도가 다를 것이다. 경제학에서는 인센티브에 반응하여 합리적인 선택을 추구하는 면을 조명하고, 사람이 쉽게 하는 일을 기계에게 가르치려는 분야에서는 도대체 사람은 그 일을 어떻게 하는지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데 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때의 인간은 섬세하고 복잡하면서도 때로는 과감한 일종의 컴퓨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렇다면 생물학 그중에서도 특히 DNA와 유전자를 연구하는 관점에서 바라보는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여기에 관심이 있다면 『바이올리니스트의 엄지』가 재미있게 읽힐 것이다. 제목이 소설처럼 보이지만 DNA에 대한 과학 책이다. DNA의 발견과 규명에 기여한 인물들의 일화를 들려주고, DNA 연구를 통해서 우리가 알게 된 지식을 다양한 에피소드와 엮어서 재미난 이야기하듯 설명한다.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는 엘러스-단로스 증후군이라는 유전 질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병에 걸린 사람은 관절을 매우 유연하게 구부릴 수 있는데, 파가니니의 손가락 특히 엄지가 매우 유연했고 그점이 바이올리니스트로서의 경력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책 제목은 여기에서 나온 것이다. 참고로, 그 병은 엄지를 유연하게 만들어준 대신 파가니니의 몸을 망가뜨렸다.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인 내용은 7장 『마키아벨리 미생물』이었다. 요지는 바이러스가 다른 종에 침입해서 그 종의 DNA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작업은 바이러스가 세포를 감염시킨 뒤 자신의 DNA를 그 세포의 유전체에 이어붙이게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한 번 변형된 DNA는 열심히 자신을 복사하며 후대에까지 이어지며 누적된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는 잘못된 이름인데, 우리의 게놈(유전체) 중 8%는 인간의 것이 전혀 아닌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우리의 염기쌍 30억 개 중 약 2억 5000만 개는 아주 오래된 바이러스의 유전자이다. 전체 DNA 중 순수한 인간 유전자는 2% 미만에 불과하기 때문에,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는 인간보다 바이러스의 속성이 4배쯤 많은 셈이다., 184p

돌연변이나 유성 생식 외에 이런 방식으로도 우리의 DNA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그런데 책에는 더 놀라운 이야기가 이어진다. 주인공은 바로 톡소포자충이라는 기생충이다. 원래 쥐는 고양이 오줌 냄새를 맡으면 무서워서 도망간다고 한다. 그런데 포유류의 뇌에 침입해서 혹을 만드는 톡소포자충에 노출된 쥐는 오히려 그 냄새를 좋아하게 된다. 위험천만하게도 고양이 오줌이 있는 곳에 다가가고 당연히 잡아 먹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여기에 톡소포자충의 유전자 중 2개가 도파민(뇌에서 황홀감을 느끼게 하는 화학 물질) 생성을 돕는다는 사실과 톡소포자충은 고양이의 창자 속에서만 유성 생식을 한다(톡소포자충은 고양이 창자로 돌아가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연결하면… 썩 유쾌하지는 않은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톡소포자충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하기는 어렵다. 이들 역시 톡소포자충이 감정의 생물학에 대해, 그리고 두려움과 매력과 중독 사이의 연관 관계에 대해 드러내는 사실에 전율을 느끼는 반면, 자신들의 연구가 의미하는 것에 오싹함을 느낀다., 195 – 196p

바이러스가 몸에 침입해서 DNA를 바꾸어 놓는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느껴진다면 이런 주장이 조금이나마 더 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인간 게놈에서 보르나바이러스 DNA를 발견한 과학자들은 보르나바이러스가 이 DNA를 우리 영장류에게 강제로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우리 염색체가 이 DNA를 ‘훔쳤다고’ 생각한다. (중략) 이동성 DNA가 오래 전에 보르나바이러스를 공격해 그 DNA를 납치한 다음, 그것을 갖고 있는 편이 유리하다고 판단하자 계속 보존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200p

미래에 DNA와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도 인간에 대한 관점은 지금과 동일하게 남아 있을까? 아니라면 어떻게 변할까. 7장의 내용을 더 소개하면, 일부다처제 습성이 있는 밭쥐를 유전자 변형한 바이러스에 노출시켰더니 갑자기 한 아내에게 충실하게 바뀌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그리고 생쥐뿐만 아니라 사람도 톡소포자충에 감염될 수 있다고 한다. 연구자들이 느꼈다는 오싹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인간의 신경세포에서 영감을 받은 컴퓨터 알고리즘이 세상을 덮치고 있는데, 세포보다 더 근원적인 수준을 다루는 세상이 이렇게나 가까이 와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